어느날 열심히 제안서를 작성 중인 저희 이사님께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사업 참여를 직접 기획하고, 또 전 과정을 리딩하시면서, 어쩔때는 필드에서 뛰기도 하시는, 저희 이사님은 실무자로서 공공사업을 어떻게 생각하시고, 또 매번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 계시는지가 문득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공공사업에 참여하는 건 중소기업에게 매력적인 기회이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혀 보면 여러 벽에 가로막힐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몇 번의 프로젝트를 통해 느꼈던 아쉬움과 어려움들이 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저희 이사님의 경험을 토대로 실무진이 겪는 직접적인 애로사항들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공공사업에 대해 조금 더 현실적인 이해를 얻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Tip : 괜히 여쭈어봤다가 2시간 얘기 들었습니다.
과업심의위원회, 누구를 위한 자리인가?
공공사업을 시작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가 바로 과업심의위원회입니다. 본래는 요구 변경 시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사업을 제3자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투명성과 객관성을 지향해야하는 제도이지만 간혹 탁상공론으로 머무는 경우가 있습니다.
- 발주자 중심의 시각: 심의위원회는 대부분 발주처의 입장에 치우친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전에 발주처에서 같은 동일 스팩의 타 벤더 장비로 전수 교체를 요구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주사업자 입장에서는 장비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비용적 측면 외에 벤더와의 파트너 관계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이미 선정된 제품을 빼달라고 말하는 것이 무척이나 조심스럽습니다. 이때 과업심의위원회는 비용적 측면만을 고려하여 발주자의 교체 요구에 손을 들어줬습니다.
추가 사례: 이 당시 저희 회사는 발주사와 소송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막상 분쟁이 발생해서, 과업심의위원회를 개최했지만 위에 서술했듯 발주사의 요구가 수용되었고, 이후 기세를 잡은 발주사의 다른 요구가 지속적으로 빗발쳤기 때문입니다. 대표님께서 몇달간 법원을 다니시며 고생하셨죠.
기술협상과 ‘안정화 기간’의 현실
기술협상 단계에서 ‘안정화 기간’은 사업자와 발주처가 시스템 정상 운영을 위해 협의하는 기간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현실적인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 예정된 검수 일정 강행: 사업이 지연되더라도 검수 일정은 거의 예외 없이 강행됩니다. 결국 검수는 서류상으로 완료하고, 안정화 기간 동안 문제를 보완하는 구조가 정착되어 있습니다. 사업의 지연이 발주사 사업관리자의 능력 부족으로 인지되는 것을 염려하는 기조 때문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결국 봐주기식 검수는 궁극적으로 사업의 품질을 저하 시키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 책임 전가: 검수 후 안정화 기간에 발견되는 문제점들은 대부분 사업자의 책임으로 돌아갑니다. 가끔은 발주처의 요구사항 변경이나 초기 기획 부족이 원인일 때도 말이죠. 또, 담당자가 변경이라도 되는 경우 이전 담당자가 숨겨두었던 문제들이 발생하면 이를 사업자에게 돌리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합니다.
사례: 어느 프로젝트에서는 발주처의 요구사항이 검수 후에도 계속 추가되었습니다. 안정화 기간에도 시스템의 고도화를 위해 불철주야로 패치와 보완을 해야 했습니다. 역시 추가 비용이나 시간은 지원되지 않았죠.
HW/SW 납품과 조달 납기 ‘오고 있는거죠?’
공공사업에서는 HW/SW 조달도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특히 시스템 구축과 같이 조달이 중요한 프로젝트라면 더욱 그렇죠. 하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서 조달은 항상 시간과의 싸움이 됩니다.
- 딜리버리 이슈: 서버, 네트워크 장비, 스토리지 등 각 HW의 공급 시기가 모두 제각각이라 전체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 쉽고, 대부분의 사업에서 공공 조달 시스템 특성상 복잡한 행정 절차로 인해 발생하는 이슈와 하도급 업체들의 갖은 이유들이 만나 결국 딜리버리 납기는 1차, 2차, 3차로 뻗어나가게 됩니다. SW 공급을 제때 약속했던 벤더들은 납기일이 다가오면 목소리가 작아집니다. “테스트를 해보니.. 조금 불안정해서” 결국 모든건 이를 리스크로 관리하지 못했던 사업자의 책임이 되겠죠.
- 사업자 부담: 결국 사업자는 납기 지연의 책임을 지며, 공급사를 다그쳐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사례: 물론 변수가 많은 조달 환경을 십분 이해해주는 발주자도 있었습니다.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서버 납품이 예정일보다 두 달이나 늦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입장을 고려한 사업대가 상위기관에 이를 보고하지 않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사업대에서 실사를 나오게 되었죠. 당시 회사 창고에 있던 빈 박스 세개를 공수해서 서버실 한켠에 놓아두고 절실하게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노력은 우리가 했는데, 사업은 남이 가져간다?
공공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RFI(Request for Information), RFP(Request for Proposal) 작성 등 초기 사업 준비를 돕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원칙상 RFI와 RFP는 발주자가 작성해야하지만, 이를 사업자가 지원하고, 입찰 경쟁 시 유리한 위치에서 경쟁하는 속히 말하는 들러리식 제안 발표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는 조달 평가 제도가 지속적으로 활성화되어 줄고있는 추세긴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제는 공정한 조달 평가 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사업이 조달 평가 단계로 넘어가면 그동안의 기획과 노력은 사실상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합니다. 제안이 공정하게 평가되기 때문이죠.
“위에서 조달 평가 하도록 지시하셔서 어쩔 수가 없네요. 그래도 발표 잘하시면 되죠?” 저희 같은 업체는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다음 기회를 약속받기 위해 말을 아낄 수 밖에 없습니다. “네.. 그럼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이는 공정할지언정 공평하지않은 상황이 되는 것이죠. 발표에서 지는 경우도 발생하니까요.
- 시간과 리소스 낭비: 초기 단계부터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했지만 결국 수주에 실패하면 그 부담은 사업자에게 고스란히 남습니다.
사례: 저희 이사님은 이러한 경우가 제일 힘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RFI, RFP 작성하고, 제안서까지 잘 다듬어서 제출하면 경영진들은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거의 먹은 사업이네!” 막연한 기대감이 더 큰 실망을 부르는 법. 그 화살은 모두 누군가에게로 향하게 되어있답니다.
공공사업, 모두가 만족하는 구조를 기대하며
공공사업은 분명 중소기업에게 기회이자 도전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합리한 구조와 불투명한 프로세스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죠. 과업심의위원회의 보수적인 시각, 안정화 기간의 불합리함, HW 조달의 복잡함, 그리고 발주자의 업무 부담을 대신 짊어지는 문화까지,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습니다.
이 글이 공공사업을 준비하는 중소기업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는 발주처와 사업자가 서로 신뢰하고, 실질적으로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현실은 여전히 까다롭지만, 기술과 경험으로 돌파해 나가는 우리의 모습이 언젠가는 더 빛을 발하리라 믿습니다.
이사님 힘 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