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 솔루션 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

입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절에, 사수를 따라 도착한 고객사에서 현재는 취급하지 않는 단종된 장비를 보았다. 접속부터, 설정 변경까지 모든 과정이 번거로운 장비였다. 고객은 당연히 Dashboard를 참고하는 것 외에 어떠한 설정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정의하는게 옳을 수도 있겠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장비 설정 변경과 모니터링이 엔지니어들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정책을 세우는 작업도 원격으로 지원하기 부기지수였고, 점검 당일에 부탁할 설정 내역을 정리해두고 나를 기다리는 고객들도 많았다.


고객의 전문화

오랜만에 과거 생각이 조금 났습니다. 고객사의 담당자들이 인프라 관리자 업무를 겸직하던 시절, 조직에서 수행해야 하는 주 역할이 있었기에, 아무래도 전반적인 관리를 엔지니어에게 일임하고, 필요한 것들만 요청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팀원들끼리 장난처럼 하는 말이지만, 그때의 담당자들은 엔지니어의 말을 모두 믿어주던 분들이셨습니다.

시간이 점차 지나고, 고객사의 환경도 점차 전문화 되었습니다. 조직의 DX가 수행되고, 해당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를 필요로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새로운 담당자들은 대개 엔지니어 출신이 많았습니다. 장비의 매뉴얼을 참고하면서 원하는 설정을 변경하기도하고, 때로는 장비 깊숙히 숨겨진 로그를 분석하기도, 생소한 기능을 직접 테스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고객사의 장비 설정을 변경하는 경우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오히려 호기심에 가득찬 담당자의 문의를 처리하는 경우가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엔지니어링 서비스의 무게중심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높아진 담당자의 전문성에 부합하기 위해, 엔지니어의 전문성이 더욱 요구되었습니다. 엔지니어는 서비스하는 장비의 내부 로직과, 각 기능별 매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필수로 숙지하고 혹시 모를 고객의 문의에 대비하여야 했습니다. 이전에는 중소기업 특성상 여러개의 벤더 솔루션을 한사람이 동시에 서비스하면서 영업 기회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고수했었는데, 이제 하나의 솔루션을 서비스하기에도 벅찬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죠. 당시 오래된 엔지니어 팀원들이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거 퇴사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안정성은 기본, 편의성을 추구하는 고객들

기존의 고객들은 기능과 성능,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사의 지원 역량 등을 우선 고려하여 솔루션을 선택했었습니다. 당시에는 공급사의 역량에 따라 안정성이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에, 더 크고, 레퍼런스가 많은 공급사를 신뢰하던 경향이 강했습니다. 공급사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신규 기능에 대한 개발보다는, 기존 기능을 안정화 시키기 위한 개발이 주로 수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안정적인 시스템을 선호하는 시장의 Needs를 충족하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다수의 공급사들이 솔루션의 안정화를 보증하게 되었습니다. 가동률 99.99%를 보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인력 또한 상시 헬프데스크 체제로 운영하기 시작했죠. 한 공급사의 파트장급 엔지니어가 제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요즘에는 장애가 없어서 주니어 급의 엔지니어가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다”라고 말입니다. 담당자들은 default가 되어버린 안정성으로 인해, 편리함이라는 가치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보안 솔루션은 목적에 부합하는 기능과, 운영의 안정성은 필수로 보장하고, 담당자의 Work Factor를 줄일 수 있는 편리함을 추구하기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클라우드 네이티브 환경에 설치될 수 있어야하고, 여러 솔루션들과 호환성을 보장하는 것을 물론, 자원의 할당과 회수, 무중단 패치,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등의 조건까지 만족하면서 말입니다.


변화에 대응하는 자세

최근 AI 빅테크 기업들은 성능에 대한 개선 뿐 아니라, 사용자 친화적인 관점에서의 개선을 통해 서비스 보편성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사용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더 나은 성능과 획기적인 기능을 개발하는 것 보다, 사용자의 편의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IT 시장의 급격한 변화는 앞으로도 매우 많은 서비스와 Task를 파괴하고, 중단시킬 것입니다. 과거 생존 수단에 집착하고, 변화에 대비하지 않는 자세를 고집한다면,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이고, 머지않아 파괴되는 서비스가 되고 말겠죠. 시장은 이제부터 대부분의 서비스가 “사용자 친화적”인 방향으로 진화해야한다고 말합니다. 보안솔루션 시장에도 사용자 친화적인 혁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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